알고리즘의 노예

[시나리오] 알고리즘의 노예, 혹은 생존자: 쿠팡이라는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기

등장인물: 지훈 (32세, 퇴근 후 노트북을 켜는 N잡러 직장인)


씬 1. 서울의 원룸, 오후 11시 30분

지훈의 듀얼 모니터 왼쪽에는 뉴스 창이, 오른쪽에는 블로그 편집창과 홈택스가 띄워져 있다.

왼쪽 화면의 헤드라인들은 살벌하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 환경 논란', '알고리즘 PB 상품 자체 우대 의혹 공정위 과징금', '입점 소상공인 수수료 및 정산 주기 압박', 그리고 '블로그 생태계를 망친 쿠팡 파트너스 링크 도배'. 댓글 창은 분노로 들끓는다. "쿠팡 불매한다", "광고 링크만 보면 치가 떨린다", "거대 자본의 횡포다."

하지만 지훈의 시선은 곧바로 오른쪽 모니터로 향한다. 홈택스 사업자등록 완료 문자, 그리고 쿠팡 파트너스 대시보드.
'오늘의 전환 실적: 3건, 예상 수수료: 4,120원.'

지훈은 헛웃음을 삼킨다. 4천 원. 지하철 기본요금 두 번 찍으면 사라질 돈이다.

씬 2. 합리화의 방, 자정

지훈에게 쿠팡은 필요악인가, 아니면 그저 필수품인가?

2030 세대에게 쿠팡은 이미 생활 인프라다. 물을 사고 휴지를 사고, 내일 아침 출근길에 마실 단백질 음료를 밤 11시 59분에 결제하면 아침 7시 문 앞에 와 있는 나라. 사람들은 플랫폼의 노동 착취와 독점적 지배력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손가락으로는 로켓와우 결제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깨달았다. '월급 250만 원으로는 집도, 차도, 미래도 살 수 없다.'
유튜브와 블로그는 외친다. "자면서도 돈 버는 자동화 수익", "퇴근 후 1시간 쿠팡 파트너스."
불신과 혐오의 대상인 바로 그 플랫폼이, 역설적으로 청년들에게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생존의 동아줄'로 둔갑해 있다.

지훈은 마음속 깊은 곳의 인지부조화와 마주한다.
'나는 왜 쿠팡을 비판하면서, 쿠팡의 물건을 팔아주며 수수료 3%를 구걸하고 있는가?'

자신을 향한 변명은 교묘하고 정교하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산다."
"이건 쿠팡을 돕는 게 아니라, 플랫폼의 거대한 자본에서 내 몫의 푼돈이라도 뜯어내는 합법적 빨대 꽂기다."
"어차피 거대 플랫폼 독점 시대다. 도덕적 순결성을 지킨다고 내 통장 잔고를 국가나 사회가 채워주진 않는다."

불합리한 죄책감은 '현실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위로로 바뀐다.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시스템에 기생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똑똑한 생존법이라는 자기기만이다.

씬 3. 불편한 시대의 고백, 새벽 1시

글을 쓰던 지훈의 손이 멈춘다.
이왕 쿠팡 파트너스를 할 거라면, 대충 링크만 뿌려대는 '스팸 업자'가 아니라 정성스러운 리뷰로 독자에게 가치를 주는 '진짜 마케터'가 되어야 할까?

하지만 그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 결국 끝에 가서는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라는 문구를 달고, 거대 유통 공룡의 매출 곡선을 0.0001% 올려주는 부속품일 뿐이다.

이 시대는 왜 이렇게 불편한가?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낮에는 과로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이면서, 밤에는 새벽배송 기사의 속도를 재촉하는 소비자이고, 새벽에는 거대 플랫폼의 하청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몇 푼의 클릭을 유도하는 크리에이터가 된다.

윤리와 생존, 가치소비와 가성비 사이의 분열. 플랫폼을 증오하면서도 플랫폼 없이는 단 하루의 일상도, 한 줌의 부수입도 만들지 못하는 이 얄팍한 시대의 서글픈 초상이다.

지훈은 마우스를 쥐고 마지막 문장을 입력한다. 그리고 목이 타는 듯 건조한 입술을 축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쿠팡 앱을 켜서 탄산음료를 검색한다.

씬 4. 결말과 반전: 로켓배송 장바구니

모든 씁쓸한 고뇌와 시대적 자조가 끝난 지훈의 모니터 하단에 뜬 화면.
방금 전까지 자본주의의 괴물을 한탄하던 지훈의 손가락이 멈춘 곳은, 결국 내일 아침 문 앞에 꽂힐 '사이다 묶음' 결제창이었다.

쿠팡에서 배송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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